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바뤼흐 스피노자 (문단 편집) === 스피노자의 결정론은 인간의 자유를 배제하는가? === 절대적 필연을 인정하는 스피노자의 철학이 어떻게 윤리를 말할 수 있는가는 오래된 논쟁거리 중 하나다. 결정론에서는 모든 것이 다 결정되어 있기 때문에, 굳이 '마땅히 따라야 할 윤리'를 말할 필요가 없는 것이 아닌가? 즉, 나쁜 것이든 좋은 것이든, 선택할 자유도 없다면 윤리도 필요 없는 것이 아니냐는 질문이다. 이에 대한 스피노자의 생각은 '인간이 선택은 할 수 있지만, 사건은 이미 상황에 달려 있다'는 것이다. 쉬운 예를 들면, 비행기 사고에서 우리는 살기위해 안전벨트를 매거나 산소호흡기를 착용하거나 몸을 굽혀 머리를 보호하거나 낙하산을 타고 탈출하는 등을 할 수 있다. 그러나 중력을 거스르고 맨몸으로 하늘을 걸어다니거나 한손으로 비행기를 멈춰 세우는 등은 할 수 없다. 모든 사건은 원인에 따른 상황에 종속된다. 그 상황이라는 한계 속에서 인간은 선택의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것이다. 게다가 그 선택의 결과마저도 자신의 통제하지 못하는 상황에 결정되는 것이 아닌가? 그렇다. 선택 이후에도 인간 행위의 결과들 역시 상황들에, 즉 그 자신이 선택하지 않았고 그 자신이 온전하게 인식하지도 통제하지도 못하는 그러한 상황들에 달려 있다. 따라서 인간은 선택할 수 있다. 하지만 그 결과는 '''결국''' 인간의 바람에 달려 있지 않다.[* 원인과 결과라는 '상황의 관점'에서는 인간에게 자유가 없다고 할 수 있다. 그러나 '선택의 관점'에서는, 인간이라는 개체는 그 자신의 역량 내에서 선택의 자유를 가진다고 말할 수 있다. 물론 그 인간이 선택의 자유를 누린다고 해서, 원인과 결과라는 상황 자체를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.] 이와 같은 논리로 인간이 그 자신의 행동을 선택할 자유가 있다고 치더라도, 우리가 윤리적 행동을 '굳이' 선택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? 스피노자에 따르면, 이성을 통해 필연성의 원인을 '''이해'''하는 선택만이, 우리의 코나투스를 '능동적'으로 증대시켜주기 때문이다. 즉, 그 선택은 상황을 바꾸진 못하지만, 그 선택은 코나투스의 증대를 일으키고 그것을 통해 우리의 마음을 행복하게 해줄 것이다. 그래서 '이성의 계명들'(dictamina rationis)이 필요하다.[* 피에르-프랑수아 모로 『스피노자 매뉴얼』 에디토리얼. 2019. p.199 참조.]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